fnctId=bbs,fnctNo=1158 11 건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경찰학부 경찰행정학전공 민웅기 동문(교정직 공무원 합격수기)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1733 첨부파일 3 안녕하세요. 경찰학부 경찰행정학전공 09학번 민웅기입니다. 민웅기 동문 졸업사진 제가 2020년 교정직공무원(교도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대학 3학년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2018년 졸업 후에도 계속 공부했으며, 오랜 수험생활 끝에 2020년 교정직 9급에 합격하였습니다. 수험기간은 햇수로 총 5년이었으며 2년 정도는 학교생활과 병행하고 어머니 병간호를 도와드리며 공부하느라 제대로 못 했었고 실제 공부한 기간은 2년 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작년 12월 최종합격 후, 지난 1월 법무연수원에 입교하여 코로나 사태로 인해 3주 간의 연수를 마치고, 2021년 2월 8일부터 춘천교도소로 발령받았으며 교정공무원(교도관)으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오랜 수험생활 동안 끝까지 믿어주시고 도와주신 부모님과 김안식 교수님(경찰학부 교정보안학 전공), 묵묵히 응원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Ⅰ. 나의 수험생활 1. 기본 베이스 저는 노 베이스 상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국어, 영어, 한국사, 교정학, 형사소송법 5과목 모두 기본부터 시작했고, 많은 분들이 고민하시는 영어 또한 기본적인 문법, 어휘, 독해가 안 되는 말 그대로 노 베이스 상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 하루 공부량 공시 공부를 하실 때 공부시간을 체크하며 공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다른 생각하는 시간, 잠깐 조는 시간 등등을 다 빼고 순수 공부하는 시간만을 타이머로 잰 시간을 순공 시간 이라고 표현합니다. 제가 시간을 재보니 순공 시간이 5시간이 안 돼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은 절대적인 공부량을 채워야만 합격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따라서 저는 매일 순공 8시간을 목표로 공부했으며 8시간을 채우기 위해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매일 공부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3. 독서실 아르바이트와 공부 스케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독서실 아르바이트를 강력 추천드립니다. 저는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2년 동안 독서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오후 총무로서 아침 11시 기상하여 오후 1시부터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저녁 8시에 총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면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새벽 3시에 취침하는 방법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오전 총무로 옮기게 되었고 아침 8시에 출근하여 독서실 총무 일을 하다가 저녁 8시에 마치고 남아서 저녁 11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돌아오는 스케줄로 공부했습니다. 공부 초반에는 영어, 한국사, 국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했고, 이 3과목이 어느 정도 잡힌 다음 선택과목인 교정학과 형사소송법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다만 영어와 한국사 공부는 매일 고정적으로 했습니다. 또한 그날 공부가 아무리 잘 돼도 저녁 12시에는 취침하려 노력했고 아침 7시 30분에 기상하였습니다. 4. 슬럼프와 휴식 공부를 하다 보면 반드시 슬럼프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하기 싫어도 적어도 순공 5시간은 채우려고 노력했으며 그것조차 안 될 정도로 아예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공부를 다 내려놓고 확실히 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쉼이 길어지면 절대로 안 됩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슬럼프 또한 결국 공부로 극복해내야 합니다. 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공부를 하였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책은 쳐다도 안 봤습니다. 푹 쉬는 것이 중요했고 그래야 다음 한 주 공부를 해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정말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안 만났으며 시험을 앞둔 3개월정도 전부터는 아예 모든 연락과 만남을 끊고 공부만 했습니다. 쉴 때는 주로 잠을 잤으며 영화도 많이 보았습니다. Ⅱ. 과목별 공부법 1. 공통과목(국어, 영어, 한국사) 국어는 이선재 강사님의 커리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기본강의, 기출, 매일국어, 독해야 산다, 모의고사 등등 거의 모든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한자는 한자성어만 완벽히 하였고, 문법을 확실히 잡아놓는 것이 중요하며, 독해는 매일 꾸준히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선재 선생님의 독해야 산다 자료가 좋기 때문에 하루 한 지문씩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영어는 이동기 선생님의 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어휘는 매일 공부 시작을 영어 단어 1시간 외우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동기 선생님의 어휘 3000 단어집을 보았으며, 문법과 독해는 하프 모의고사를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하프에 나오는 문법과 독해를 철저히 분석했고 모르는 부분은 기본서로 돌아가 복습하는 방식으로 공부하였습니다. 결국 영어를 잡지 않고는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국사는 전한길 선생님의 커리를 들었는데, 기본강의, 필기노트, 기출, 모의고사, 현대사, 문화사 특강 등 거의 모든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필기노트 강의는 총 10번 정도 들은 것 같고 기출문제집도 거의 20번 가까이 푼 것 같습니다. 특히 기출문제집과 필기노트가 좋았고 이 두 가지만 완벽히 소화해 낸다면 고득점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선택과목(교정학개론, 형사소송법개론) 교정학개론은 김지훈 강사님의 커리를 따라 기본강의, 심화강의, 법령집 강의, 기출강의, 모의고사 등 모든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기출문제집에 수록된 문제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기출문제집만 잘 소화해도 충분히 고득점이 가능합니다. 형사소송법개론은 신광은 강사님의 강의가 좋았습니다. 특히 2단계 모의고사 강의에 나오는 문제들만 완벽히 소화하면 시험 보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형소법은 쉽게 점수를 올릴 수 있었고 점수를 어느 정도 올려놓은 후에는 공부시간을 크게 할당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판례가 문제에 나오기 때문에 잠자기 전 15분~20분 정도 틀렸던 판례들을 꾸준히 읽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Ⅲ. 교도관으로 출발선에 서다! 제가 교도관의 꿈을 갖게 된 이유는 김안식 교수님을 만나면서부터 였습니다. 사실 교도관의 꿈을 전에도 갖고 있었지만 부모님의 우려와 반대 때문에 다른 공부를 2년 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마지막 학기 때에 김안식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교수님을 통해 교도관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그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교도관이 되고 싶다는 저의 생각이 확고해 졌으며 부모님께서도 저의 모습을 보고 저를 지지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교도관으로서의 꿈을 이룬 민웅기 동문 교도관은 사람을 살리는 직업입니다. 재소자들은 사회에서 죄를 지어 교도소로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구금하고 통제하는 것만이 교도관의 역할이 아니며, 그들이 출소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그들의 인격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도관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2021년 2월 8일부터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춘천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근무를 하게 됩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교도소에 오게 된 범죄자들에게 저는 법과 원리 원칙을 지키며 교정교화시키는,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교도관이 되고 싶습니다. 보건학부 간호학전공 박세윤, 이학도 동문(대구, 경북지역 파견 간호사)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5913 첨부파일 0 사랑합니다! 백석대학교 학생 여러분!저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하여 임시 백석피플 기자를 맡게 된 백석대학교 보건학부 간호학과 17학번 위지원입니다.이번 코로나19가 장기화가 됨에 따라 백석대학교에서는 제 8차 개강연기(2020.05.16기준)를 시행하여 전 교과목에 대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안정 시 까지 대면 수업을 연기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또 다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내에도 무척 많은 혼란과 어려움으로 다들 지쳐만 가는 것 같습니다. 학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본인의 신체건강이기 때문에 백석대학교 학생여러분들 뿐만 아니라 교수 및 교직원분들께서는 정부에서 내린 바이러스 예방 지침을 준수하여 추후 사태가 완화되면 건강히 다시 학교에서 뵈면 좋겠습니다.이 기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국민들의 건강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 방역의 최전방인 대구, 경북지역으로 파견을 나간 두 동문에 대한 기사입니다. 국가적인 재난 사태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곳 현장의 심각성과 의료진의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알아보고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기 위해 작성했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힘써주신 두 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더불어 대한민국 의료진분들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면대면 인터뷰를 진행하려 했지만 두 동문께서 국가적 헌신을 하고 난 뒤 자가 격리중이기에 전화통화와 메신저를 이용하여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1. 정말 고생하셨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우선 학생들에게 본인을 알릴 수 있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세윤 동문 이학도 동문 박세윤:사랑합니다! 백석대학교 학생여러분! 저는 2020년, 제60회 간호사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 이번에 신규간호사로 활동 중인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13학번 박세윤입니다. 이학도:안녕하십니까 학우 여러분. 저는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10학번 간호사 이학도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Q2. 인사를 나눴으니 바로 인터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태가 워낙 심각하여 선뜻 나서기 어려우셨을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경북 지역으로 의료지원을 가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박세윤:저는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나서 미리 계획해 두었던 해외여행과 그토록 가고 싶었던 졸업식이 이번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되어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뉴스에서 대구, 경북지역에 있는 간호사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들었고, 면허를 취득한 의료인으로써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구, 경북 간호사 모집 의료봉사를 신청하게 됐습니다. 이학도:학교를 다니면서 굉장히 흥미 있고, 재미있던 수업이 생각납니다. 안영미 교수님께서 지도해주신 재난간호 과목 이었습니다. 제 성향이 현장에 나가 몸으로 부딪히는 성향이다 보니, 재학 당시 감히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국가적, 사회적 재난에 대해 간호사로서의 임무와 마음가짐에 대해 많이 생각 했습니다. 이러한 학생 때의 기억과 현직 간호사를 하면서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던 경험이 대구, 경북에 의료지원 차 가게 된 발판이 되었습니다. Q3. 정말 쉽지 않는 선택이셨을 건데 이렇게 국민들을 위해 나서서 주셔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지원을 하시고 파견되셨을 때 현장의 상황은 어땠나요? 박세윤:저는 경북 경주에 있는 생활치료센터 로 발령을 받아 2020년 3월 3일부터 4월 15일까지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대구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300명 정도의 환자분들이 한꺼번에 이곳 시설로 수용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초반에 구체적인 의료시스템이 잡혀있지 않은 센터였기에 환자들을 케어하며 그와 동시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조차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고, 제가 있었던 치료센터 뿐만 아니라 대구, 경북 전체적으로 완치되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초기에 심각했던 상황이 점점 완화되어 무사히 근무를 마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학도:저는 코로나 거점병원인 대구의료원에 소속되어 근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물자, 인력, 시스템 모든 것이 부족하고 생소하다보니 하나하나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혼선을 빚기도 했습니다. 병동에는 매일 같이 신환이 입원하는 상황이었고, 어느 누구 한분 편하게 오프를 받으며 근무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특히 요양병원에서 연달아 확진자가 나옴에 따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입원하게 되셨고, 업무의 강도는 점점 높아져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움을 주신 덕에, 마음을 다잡으며 근무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Q4. 그곳에 계시면서 근무 하시는 동안 어려웠던 점이나 두려우셨던 점이 있으셨을까요? 박세윤: 먼저 어려웠던 점은 코로나19에 감염된 대상자분들은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이 넘도록 격리를 하게 되다보니 환자분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증가하여 저희에 대한 컴플레인 강도가 점점 심해지시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결국 우울증과 동시에 폐쇄공포증 등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나게 되어 그분들의 고통을 모두 다 헤아릴 수 없는 제 간호의 한계를 스스로 느꼈을 때가 어려웠습니다. 두려웠던 점은 사태가 심각했던 초기에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뉴스로만 보았던 코로나19에 감염된 수많은 분들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두려운 감정이 자연스레 생기게 됐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근무했던 의료진분들의 노력과 감정을 가장 가까이 교류하다보니 이 상황이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되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학도: 사실 근무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아마 대부분의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공감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고글은 습기로 가득 차 앞이 보이질 않고, 두 겹의 장갑을 낀 채, 어르신들의 라인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습니다. 특히 대구 내 요양병원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병상은 장기요양환자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장기요양환자의 경우 혈관도 약하고, 라인을 잡기가 쉽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무릎, 엄지손가락, 손바닥에 잡아야 할 정도로 정상적인 간호 술기를 제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현장에서 가족들도 보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정신적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Q5.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세윤: 하루하루가 새로운 상황의 연속이었기에 대략 1달 동안의 그곳에 있었던 모든 기억들이 제 머릿속에서 아직도 선명히 떠오릅니다. 그 중에서 특히나 가장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데요. 완치판정을 받고 퇴원하시는 환자분이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을 때 가슴속이 뭉클해지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어 더욱더 남아있는 환자분들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조금이나마 더 신경 쓰면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학도: 아무래도 보호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레벨 D 보호복을 착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파견 초기에 착용했던 보호복은 괜찮았지만, 나중에 바뀐 제조사의 보호복은 정말이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단 1개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3시간의 격리구간 근무가 끝나고 보호복을 벗었을 때, 크룩스에 땀이 찰랑거릴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려, 모든 옷이 다 젖었습니다. 정말 소나기를 맞은 듯 젖었기에 다음 근무를 위해 환자복을 입고 들어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때 숙소로 귀가 할 때도 환자복을 입고 가다보니 1층과 귀가도중 몇몇 분에게 잡혀 해명해야했던 기억이 납니다. Q6. 이 분들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슬슬 마무리해야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우리 보건학부 학생들 혹은 의료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조언 부탁드리면서 마무리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세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도움이 각각의 대상자 특성에 맞춰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에 더욱더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가지도록 본인 스스로가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간호사라는 직업은 그러한 능력이 충분히 발휘하여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의료인 또는 의료관계인을 꿈꾸는 학생 여러분들께서는 물론 좋은 조건의 병원에 취직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며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본인이 왜 이러한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고,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훌륭한 분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학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처음 전공책을 펼쳐봤을 때, 처음 실습을 나갔을 때, 그 어떤 상상보다 간호사로서의 근무는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육체적으로, 또 누군가에겐 정신적으로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희생을 통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되새기면서 각자 본인이 어떠한 간호사가 될 것인가에 대해 학생 때 많은 고민을 하시면 임상에 나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코로나19로 의료원을 다녀오신 두 선배님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몸이나 손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또한 다른 의료진분들 역시 피로도 증가와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태원에서부터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재확산되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확산하는 과정이 언론이나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속속히 나오면서 의료진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을 위해 열심히 수고해주시는 모든 것들이 한순간의 방심으로 물거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대구, 경북지역에 있었던 두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코로나19의 현장의 분위기는 우리가 미디어 매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의료진분들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손 위생, 마스크 착용 그리고 외부활동자제 등 정말 간단히 지키기만 하여도 그분들께 큰 힘이 될 수 있는 수칙인 것 같습니다. 악화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본인들의 건강을 희생하는 저 두 선배님과 더불어 대한민국 모든 의료진분들께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SKY백석피플] 티웨이항공 객실승무원 서문석 학생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7431 첨부파일 1 하늘위의 백석인 SKY백석피플 두 번째 주인공은최근 각광받고 있는 직업인 스튜어드(남자 항공승무원) 를 꿈꾸며 관광학부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하여 티웨이항공에 최종 합격함으로 꿈을 이루게 된 15학번 서문석 학생입니다.서문석 학생의 합격을 백석가족 모두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서문석 학생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서는 저희가 소방관이쟎아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저는 약한몸을 극복하고자 해병대에 자원하였고, 이를 계기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계속 할수록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쉬지않고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전역 후 뒤늦게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제게 항공서비스학과를 권유한 사람은 여동생 이었습니다. 여동생 또한 항공서비스학과에 재학중 이었던 터라, 여동생을 통하여 항공서비스학과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던 중 항공승무원은 서비스 위주의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하여 체력단련에 대한 관심이 한참 높았던 저는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한 이후에도 국내3대 마라톤 대회 출전 및 태권도 3단 취득,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 그리고 기본심폐소생술 이수증 등을 취득하며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승무원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였습니다.4학년으로 진급하면서 여러 항공사에 대하여 알아보던 중 무엇보다 안전 을 강조하는 티웨이항공 이야말로 저와 가장 잘 맞는 항공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여러 경로를 통하여 조사해보니, 티웨이항공은 안전한 비행 을 위하여 전 직원의 훈련센터를 1,600억원을 투자하여 건립하였고, 의류업체에서 주최하는 마라톤대회에도 적극 후원하는 등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항공사의 모습이라는 확신을 다시한번 갖게 되었습니다.이 때부터 저는 티웨이항공 입사를 목표로 삼아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였고, 오늘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Role model 을 만나다 어느날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던 중 TV화면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티웨이항공의 김형이 경영본부장님 이었습니다. 티웨이항공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저는 취업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미래의 직장상사를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바로 채널을 고정하고 TV시청에 열중 하였습니다.여러 가지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씀은 초지일관 하라 는 말씀 이었습니다. 백석대학교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할 때의 목표가 수석졸업 이었는데, 여러 학교생활 과정에서 초심을 잃기도, 나태해지기도 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항공승무원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면 반드시 가슴에 새기고 싶은 글자가 바로 초지일관 이었습니다.또한 이 TV프로그램을 시청함으로 조직 구성원들간의 소통 을 중요하게 여기는 티웨이항공의 사내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티웨이항공에 대한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만, 더 나중 미래엔 경영본부장님 같은 리더가 되어야 겠다는 또 하나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공감과 경청 내가 면접관이라면 어떤 질문을 할까? 라는 제목을 두고 스스로 면접 질문을 만들어 자문자답을 하며 면접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만들다보니, 신입사원 대상자를 바라보는 회사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단순한 면접준비를 뛰어 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서비스직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는 저의 단순한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고객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이 전까지의 준비를 모두 뒤집고 제가 가지고 있는 공감과 경청 능력을 최대한 보여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단순한 질문과 응답이 아닌 고객의 입장을 우선시 하는 자세를 가지고 답변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티웨이항공 면접날 기내식이 맛없다고 컴플레인 하는 고객을 응대해 보시오 라는 질문에 대한 role-play를 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준비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고객의 마음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드렸고,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내의 불가피한 상황에 대하여 고객에게 설명드리며 추후엔 꼭 맛있는 기내식을 제공해 드리도록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대부분의 면접관들께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셨고, 오늘의 모습을 기내에서도 꼭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같은 꿈을 꾸는 여러분에게 원하는 기업에 취업할 때에 좋은 학점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점은 한번 받으면 절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학기중에 최선을 다해야만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학점관리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또한 서비스직종의 특성상 상대로 하여금 호감을 갖게 만드는 여러 가지 비교과 활동들도 필수입니다. 저는 앞서 말씀드린 활동 이외에 독서클럽 등의 활동을 통하여 다른사람들과 편안하게 소통하는 습관을 익혔습니다. 물론 어학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필수입니다. 처음 토익시험을 보고 200점대 성적표를 받았던 저는, 이를 극복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였고, 현재 저의 토익점수는 850점입니다. 도전해보기 전에 포기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특히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을 희망하는 예비 후배님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항공승무원은 보여지는 예쁜 모습, 화려한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평온한 비행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백조의 물갈퀴 같이 쉼없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항공승무원들입니다. 또한 승객들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해야 하는 지식도 갖추어야 합니다. 이 일을 사명이라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임할 준비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준비가 된 여러분은 모두 좋은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 2019년 9월 25일.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9월 25일자로 티웨이항공의 승무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기대, 설레임, 두려움... 말할 수 없는 여러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가슴도 두근두근 뜁니다. 티웨이항공을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티웨이항공에서의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겠습니다.정말 열심히 살아온 백석대학교에서의 4년을 좋은 열매를 맺으며 마무리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여러분 모두 꿈을 가지고 도전하세요.기회는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옵니다! 보건학부 간호학전공 심하은 동문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외래교수/가톨릭대학교 간호학 박사과정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6138 첨부파일 1 안녕하세요. 저는 백석대학교 보건학부 간호학과 2009학번 심하은 입니다.저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외래교수로 출강하며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간호학과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저도 아직 꿈을 향하여 쉼없이 걸어가고 있지만, 백석대학교에 입학 후 지금까지 경험하고 느꼈던 시간들에 대하여 백석가족 모두와 나누고싶어 공유하려고 합니다.저는 고등학교 때 문과였습니다. 저의 전공으로는 여느 친구들처럼 인문계열, 경영계열 쪽으로 학과를 고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능을 본 후 경기도 한 요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으로 제 꿈이 바뀌었습니다.어르신께는 실례일 수 있겠지만 어린 10대 후반의 저에게 그 치매어르신은 너무 귀여웠습니다. 노인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간호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치매 노인의 ‘귀여우시고 아가 같으신(?)’면만 제가 경험하고 기독교대학의 첫 간호학과라는 이유로 부모님께서 권유해서 문과와 교차지원이 되는 백석대학교 보건학부 간호학과에 1기로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형제 중에서도 큰딸, 고등학교도 첫 기수였기 때문에 1기의 몇 가지 좋은 점과 힘든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이라는 설레임과 자유한 선택만큼 짊어지는 무게와 개척해야한다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1학년 1학기는 열심히 놀았습니다. 첫 개강파티 때 술을 너무 마셔서 친구 등에 업혀서 동기 집에서 잔 경험도 있습니다.(그 동기는 지금 미국에 가있네요^^) 그때 대학생이 되었다는 쾌감과 함께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았습니다. 해부학 시험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어려운 해부학의 시험의 악몽이..1학년 2학기 때부터는 이제 공부를 좀 해야겠다. 내 미래를 내가 책임지므로 더 이상 놀기만 할 수 없다 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워밍업의 단계여서 공부가 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가지고 청춘사업도하고, ‘좀 더 나의 스펙을 올려 볼까?‘하는 욕심도 가진 시기였습니다.제가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2학년, 아직 “간호”가 들어가는 전공과목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약리학, 미생물학 등등.. 동기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때 당시 교수학습개발원에서 공부잘하는 법, 효과적으로 몰입하는 법 같은 방법론적인 것을 탐구하며, 마인드맵을 그려가며 열심히 익혔습니다. ‘간호사가 되는길이 쉽지는 않구나 역시. 세상에 쉬운것은 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저의 열심히 하는 과정에는 저를 이끌어주시는 우리학과 첫 교수님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힘들 때 상담을 가면 밝게 웃으시며 꾸짖(?)어 주시고 붙들어주신 따뜻한 간호학과 리더교수님, 강의준비를 강의 시간의 3배로 하시고 자기관리의 신이신 교수님. 포근하고 넉넉한 다산의 상징이신 교수님 세분을 보며 제 꿈을 키워갔습니다. 저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얼마나 공부를 많이하고 경험을 많이 쌓아야 저 자리에 갈 수 있을까. 물 속의 발길질 만큼 고고한 백조의 모습처럼 너무 우아하고 지적으로 보였습니다.3학년 전공이 시작되면서 실습과 함께 제 꿈은 무너집니다. 너무 어렵고 쉽게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대학예배 때도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어린 이십대 초반의 저는 성인되는 삶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실습지에 나가서도 내가 진짜 간호사를 할 수 있을까와 하는 부담, 불안감과 함께 제 정체성과 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았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찬양을 base로 한 학우들의 뮤지컬이 있었는데 그때 CCM과 음악이 너무 좋아 이를 붙들고 계속 들으며 상념에 젖는 시간들을 보내며 드디어 졸업을 하여 큰 대학병원을 들어갑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데 환자를 간호할 수 있을까.” 병원 현장에서 새내기로서의 두려운 마음과 생명을 다루어야 하는 중요한 환경에서의 부담감이 느껴졌습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하여 저는 인간을 알고 저의 내면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공부하게 됩니다. 인문학의 넓은 바다 속에서 제가 찾은 답은 ‘온전한 것, 완전한 것은 없다.’입니다. “상징 심리학”에 대한 제 소정의 결과물을 내놓고 또 제가 생각한 것은 저의 삶을 예술적으로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섬길 수 있는 일이 뭘까. ‘Nursing is an ART‘. 간호철학 시간에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말이 떠오르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달란트로 간호를 다시 해보자 하여 다시 간호사로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는 환자들, 지속적으로 간호사의 케어가 필요한 환자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임상간호사는 Dynamic ART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현재 모교의 임상실습강사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학생들의 질문과, 또 제가 느꼈던 것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고민들, 상황들을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실습지도의 리더로써 잘 이끌어나가야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버텨나가고, 심지어 열정이 넘치는 예비 간호사들을 보면 제가 도리어 힘을 받습니다. 졸업 후 어떤 길이 펼쳐질지, 어떻게 날개를 펼칠지 고대하고 기대하게 됩니다.온전한 균형 보다는 흔들리는 과정에 있는 균형을 받아드리며 충만한 대학생활을 하길 기도합니다. 보건학부 응급구조학전공 김성호 동문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4206 첨부파일 1 안녕하세요.2014년 2월에 보건학부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한 10학번 김성호입니다.현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정규직신분으로 1급응급구조사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아직은 저 역시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후배여러분에게 어떤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던 중 학창시절의 일들과 취업까지의 과정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후배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고교시절 인문계(문과)를 거쳐 이과인 보건학부로 교차지원하여 입학을 했습니다.생소할것 같은 대학에서의 학습을 시작하며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임이 더 컸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신입생으로서 부푼 꿈을 안고 처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첫 수업에 임할 때엔 '열심히 하면 나도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졌고, 괜한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좋으신 교수님들의 강의시간 또한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부족했던 저는 저의 한계를 느끼며 마음이 무척 어려웠습니다.그리고 전공과목을 더 즐겁게 잘 이해하며 학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던 중,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친구들에게 질문을 할 때에 부끄러울 수도 있을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수업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더 컸기에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가며 부족한 부분을 배웠습니다. 그 이후 계속 친구들의 신세를 질 수 만은 없었기에 그 시간 수업내용은 강의실을 나서기 전에 다 이해하자는 각오로 수업에 임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대하면서 1급응급구조사로서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해 보고 싶어졌고, 이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실습에 임하면서 졸업 후 첫 직장은 응급의료센터로 진로를 결정하였습니다.그 때 부터 피나는 입사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만약에 내가 인사과라면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남들과 똑같이 준비하는 영어 공부, 성적관리 이외에 무엇을 더 준비하고 경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노력의 댓가 였는지 마침 저는 교내외로 여러 교과 및 비교과활동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여러가지 생각의 폭도 함께 넓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들을 기반으로 그토록 원하던 분당서울대학교병원으로 드디어 첫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책에서만 뵈었던, 메스컴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응급의학분야의 대가들을 많이 뵐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비록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퇴사 전까지 저분들께 되도록 많은것을 배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종류의 기구들을 다루면서 모르는 것은 스스로 찾아보았고, 같은 직종뿐만 아니라 응급의료센터에서 함께 근무하는 타분야의 종사자들과 협력하고 토론하며 많은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좋은동료이자 친구였고, 가족이며 스승이었습니다.매일이 보람되고 즐거웠던 병원에서의 생활은 계약 기간의 종료와 함께 마감하게 되었고, 병원에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현대제철 이라는 산업체에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병원과는 달리 산업체는 초기 신고부터 현장에서의 환자 문진, 평가 및 처치 그리고 무사히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는 것까지 본인의 판단하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병원에서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고,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산업체에서의 생활도 저에게는 좋았지만, 이전에 근무했던 응급의료센터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더 많은것들을 경험하며 배우고 싶었고, 그렇게 하여 전문가로서 1급응급구조사의 역량을 더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처음으로 1급응급구조사 정규직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입사 준비를 하였습니다.병원을 떠나온지 오래되어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근무하던 시절과 달라진 것들, 병원의 분위기, 홈페이지 및 병원 정책에 대한 뉴스 등 분당서울대학교병원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최대한 수집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최근에 병원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1급응급구조사로, 더군다나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의 학교생활은 공부하며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학교에서 누리고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누리고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삶에 있어 정해진 답은 없지만 다양한 경험과 노력들이 여러분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고, 자기 자신만의 답안지를 채워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원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 대해 입사 준비를 하고 원하는 곳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원하는 곳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 생각하고 준비해나가기를 바랍니다. 혹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두드리세요.여러분의 교수님, 그리고 앞서 경험하고 있는 선배, 실무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끝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SKY백석피플] 아시아나 항공 객실승무원 조유림, 남주은, 최예원 동문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7465 첨부파일 1 새봄을 맞이하여 백석피플에서는 '하늘위의 백석인' SKY백석피플 시리즈를 마련하였습니다.그 첫 주인공은 아시아나 항공에 근무하고 있는 관광학부 항공서비스학과 졸업생(19년 2월 졸) 조유림, 남주은, 최예원 동문 입니다."아름다운 사람들" 이라는 광고카피 처럼 아름다운 세명의 졸업생이 여러분에게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세요. Q1. 왜 아시아나 항공을 선택하였는가?조유림 : 저는 아시아나 항공의 따뜻한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쉽게 정할 수 없는 진로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입사를 하게 되면 오랜기간동안 그 회사에서 근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시아나 항공이 딱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직장 일꺼라 확신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남주은 : 재학 중 아시아나 항공에서 진행하는 직무체험교실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 때 회사의 이미지가 제게 너무 좋았는데, 특히 엄격하면서 자상하신 그 때의 교관님 모습을 닮고 싶은 마음에 아시아나 항공에 지원하였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시절에 뵈었던 그 교관님께서는 현재 저의 교관님이 되셨어요. 최예원 : 현장실습 교과목 학습장소를 아시아나 항공으로 배정받았어요. 실습생의 신분임에도 아시아나 항공의 직원선생님들께서는 저를 가족같이 대해 주셨어요. 그리고 실습생의 눈으로 바라본 아시아나 항공의 승무원 선배님들이 제게 롤모델이 되어 주셨어요. 저도 아시아나 항공의 유니폼을 입고 그 자리에 서있고 싶었어요. Q2. 아시아나 항공에 입사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나만의 노하우는 무엇인가?조유림 : 먼저 재학 중 아시아나 항공으로 꼭 실습을 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학과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상담을 했어요. 다방면의 스펙을 쌓는 것이 필요했고, 가장 급한 어학능력 상승을 위하여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우선 준비했어요. 별도로 학원을 다니거나 인강을 듣지는 않았고요, 교내에서 운영되는 비교과 활동을 주로 활용하였는데, 토익스파르타와 토익스피킹은 단연 최고 였어요. 결국 토익점수가 200점 정도 상승하였고, 아시아나 항공으로 실습을 나갈 수 있었던것이 이번 합격의 지름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남주은 :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쓰이는게 면접 이었어요. 면접시간에 어떻게 나를 어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백석대학교 홍보대사, 한국장학재단 홍보대사 등에 지원하여 홍보대사로서 열심히 활동하며 내가 속한 조직의 장점을 찾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재학 중 한학기동안 대만 교환학생으로 중국어를 익힐 기회도 만들었어요. 그래서 중국인과 1:1 문화교류 활동도 했구요. 저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비교과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는데요, 관광학부에서 운영한 극한 스피킹 프로그램과 특성화 사업으로 운영한 드림팀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가장 크게 도움이 된 프로그램은 학과 주임교수님과 방학을 함께 보냈던 인텐시브(공채대비 집중 면접지도)프로그램 이었어요. 최예원 : 저는 아시아나 항공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는데, 제가 생각하는 제 약점이 작은 키 였어요.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교내 비교과 활동에는 대부분 참여했어요. 그리고 아시아나 항공에 막상 서류지원을 했는데, 작은 키가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아시아나 항공의 면접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타항공사에 같이 지원을 했어요. 그런데 뜻밖에 두군데 모두 합격을 하게 되었어요. 당연히... 두말할것 없이... 저에게는 무조건 아시아나 였습니다. Q3. 입사 후 학교가 생각날 때가 있었다면 언제 였는가? 조유림 : 실무에 직접 참여하다 보면 제게 부족한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학교가서 조금 더 배워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남주은 : 입사 직후 엄격한 선배님이나 교관님들을 뵐 때 참 따뜻했던 교수님들이 많이 생각났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저에게 또 하나의 가족처럼 생각되는 분들이 되셨어요. 최예원 : 같은꿈을 꾸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를 때, 그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고, 자연스레 학교생각이 나요. 특히 너무 더웠던 지난여름날 함께 땀흘리며 인텐시브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했던 친구들은 더욱 많이 생각나요. Q4. 비행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조유림 : 다롄행 비행기 안에서 파일럿을 꿈꾸는 제 또래의 승객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나이도 저랑 동갑이었어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친구를 만난것 같아 이것저것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남주은 : 저의 첫비행은 제주행 이었는데, 제주에 착륙 후 어떤 할머님께서 저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상냥하고 친절한 서비스에 너무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셨어요.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감동이 컸던 순간 이었어요. 최예원 : 저는 특별한 상황이 딱 기억나지는 않지만, 비행 한달만에 고객분들께서 주시는 칭송레터를 3통이나 받았어요. 제게 늘 장착되어 있는 미소가 크게 한 몫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어요. (^^) Q5. 항공 승무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조유림 : 학교생활 하면서 제가 했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에 나가보니 재산이 되어있었어요. 수업, 현장실습, 비교과 활동 등등 학교생활 중 했던 모든 경험들은 아무리 작은것 하나라도 버릴것이 없었어요. 적극적인 학교생활이 여러분에게는 견줄 수 없는 큰 재산이 될것 입니다. 남주은 : 학교생활 하는 동안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드세요. 결국 따지고보면 지금 나의 모든 시간은 의미있는 미래를 위한 필수요소 입니다. 또한 어학은 무조건 필수 라는 사실도 항상 잊지 마세요. 최예원 : 저는 앞서 말씀드렸던 작은키를 극복하기 위하여 항상 거울을 보며 미소짓는 연습을 했고, 저의 말이나 행동을 스스로 평가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내가 부족하다 느끼는 나의 약점은 무엇으로든 극복할 수 있고, 여기서 가장 필요한건 자신에 대한 자신감 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 여러분, 자신감을 가지세요! 이들은 백석대학교 항공서비스학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고교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으로 반드시 학교와 학과에 대한 사전정보를 충실히 탐색하고, 면접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합격의 비결 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남주은 동문은 고교시절 부터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 내용을 면접에서 어필하였고, 기독교대학의 면접이므로 성경구절로 시작하고, 끝인사는 영어로 마무리하는 자기소개를 준비하여 그대로 면접에 임하였다고 귀띔했습니다. 특별히 더웠던 지난 여름, 함께 면접을 위하여 땀흘려주신 나윤서 교수님께 특별히 감사드리며, 그 때 인텐시브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했던 동기들이 모두 국내 굴지의 항공사에 취업하여 같은길을 가고 있음에 무엇보다 감사드린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세 동문의 앞길에 밝은미래가 함께하기를 백석가족 모두 기도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관광학부 항공서비스학과 최예원, 남주은, 조유림 동문 보건학부 치위생학전공 재학생 김보민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3322 첨부파일 1 안녕하세요. 저는 보건학부에서 치위생학을 전공하고 있는 14학번 김보민입니다. 저는 현재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친 후 치과위생사 국가고시에 전국수석으로 합격한 후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백석피플을 통하여 제가 꿈꾸었던 치과위생사의 모습과 백석대학교에서 경험했던 대학생활, 그리고 치과위생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점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치주병(잇몸병)을 심하게 앓는 것을 보았고, 그로 인하여 체중이 20kg 가까이 감소할 정도로 고생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문에 구강 건강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치과위생사가 되고자 꿈을 가지고, 백석대학교 치위생학과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저로 인하여 저희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희망하며, 예쁜 치과위생사가 된 제 모습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이루고자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무조건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고 쉼 없이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심신이 지쳐버렸습니다. 지쳐버린 심신을 회복하고자 공부 이외의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자 노력하였고, 휴식의 중요성과 휴식을 통한 효율성 향상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학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시간보다는 질이 중요성을 생각하여 공부를 하며 중간중간 휴식을 통해 환기시키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휴식을 통하여 재충전을 해 가면서 매 학기마다 강의시간에 최대한 집중하였고, 학업은 평소의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수업 시 각 과목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이러한 각 과목의 중요한 점을 노트에 정리하여 저만의 요약집을 만들어 학과 성적을 향상시켰고, 국가고시 준비를 병행하였습니다. 국가고시에 반드시 합격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보건학부의 생활은 시험기간도 길고, 공부의 양도 방대하여 지칠 수 있고, 학습을 미루어 가며 몰아서 공부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 이었습니다. 국가고시 날짜가 가까워 질 수록 매 학기 정리한 요약집을 통하여 개념을 재정립하였으며, 모의고사를 풀어보며 틀린 문제를 토대로 오답노트를 작성하였습니다. 오답노트를 통해 문제에 대한 해답만을 보는 것이 아닌, 각 문제가 요구하는 개념과 문제의 유형을 분석하여 같은 종류의 문제가 나왔을 때 틀리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학업 생활을 토대로 느낀점은,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노력은 반드시 훗날의 좋은 반석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일에 대하여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한 오늘이 계속되어야 더 나은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의 힘든 점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평안함을 구하는 시간 또한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여 서로 간의 공부할 의지를 북돋을 수 있었습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이러한 공부와 휴식을 통해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생활패턴이 몸에 익어 국가고시준비에 더 편안하게 집중하며 전국수석 이라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인 우리들에게는 이 전보다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집니다.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것은 무척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감 또한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후회없는 대학생활이란 제대로 즐길 줄 알고 제대로 공부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알차고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가고시에서 노력한만큼 열매맺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항상 옆에서 응원해준 가족들과 동기들, 지도해주신 치위생학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이렇게 제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백석가족안에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리고, 제 이런 나눔이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STAR with 백석 - 윤종훈 동문 (문화예술학부 실용음악 전공 졸)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3611 첨부파일 1 안녕하세요! 문화예술학부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10학번 졸업생 윤종훈입니다.저는 현재 싱어송라이터 "윤딴딴" 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백석대학교의 선후배 여러분과 저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짧지만, 진심을 담아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하루에 한걸음씩! 저는 어려서부터 희망했던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10년도에 백석대학교 기독교 실용음악과에 입학 했습니다.그리고 앙겔로스 찬양팀을 섬기며 가수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그 꿈을 매일매일 이루고 실천해나가며 살아가는 지금이 정말 행복합니다.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모든 선택지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모든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학창 시절부터 저희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하루에 한 걸음씩’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걸어 가다보니 현재 위치에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이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꿈, 열정, 연구, 노력, 실천, 바른 마음 그리고 사랑! 제 인생의 전부는 꿈, 열정, 연구, 노력, 실천, 바른 마음 그리고 사랑입니다.누구에게나 주님께서 허락하신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허락하신 그 빛을 보는 것 같습니다.같은 점에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0.1도 라도 각도가 틀어지면 서로 다른 점에 찍히듯,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길 곳, 그리고 자신이 빛날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삼포세대' 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꿈을 꾸기 힘든 세상이 된것 같아 슬픕니다.그렇지만 우리들 세대에서 다시 꿈을 꾸며 살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세상이 원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세요!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아요. 도전하세요.그렇게 되기 위하여 하루하루에 의미를 담으세요. 꿈을 꾸고 실천하고 나중에 주님께로 돌아갈 때 "저 잘 살았죠?" 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자구요. 윤종훈 동문(문화예술학부 실용음악 전공, 16년 졸업)은 현재 윤딴딴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로,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OST에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 동료 싱어송라이터인 '은종'씨와 결혼을 발표하며 화제가 되었다.사진은 앙겔로스 찬양팀 시절의 윤종훈 동문(우측에서 세번째, 사진출처 : 윤종훈 페이스북) [백석피플 of 백석] 시리즈 - ③ 기독교학부 김대인 교수 (교목실 교목 겸직, 신학부 작성자 졸업생 인터뷰 조회수 2966 첨부파일 1 반갑습니다~기독교학부 96학번 졸업생 김대인 입니다.공부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다가 늦깍이로 다시 27살에 천안대학교(백석대학교)신학부 기독교교육학에 1학년으로 들어가서 공부하고 졸업 후 우리학교 신대원을 진학해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백석대학교회 부목사로 2005년까지 재직하였답니다. 신대원 졸업 후에는 다시 우리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기독교교육학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수료하고, 미국의 FULLER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학위를 취득하였답니다.현재 저는 2006년부터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독교인성과목을 가르치고 있고, 교목실에선 교목으로 우리학교의 학원복음화를 위하여 일하고 있답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세요!!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10계명 중에 하나입니다.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가 이렇게 백석대학교에서 교수로, 교목으로 재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는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만, 96년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거나 가려고 하는 학교는 아니었기에(물론 지금은 명문사학이 되었지만...)그러한 학교를 선택하도록 조언하고 지도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 그분들은 우리학교가 대학으로 설립된 초기의 학교이기에 오히려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조언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그분들의 조언이 탁월하였다는 것을 고맙게 인정하고 감사를 드리고 있답니다.재학생들과 예기를 하다보면 많은 학생들이 수도권의 대학으로 편입을 준비한다든지 졸업 후 무작정 안정적인 직장만 선호하며 학업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더 좋은 환경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그러한 곳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두각을 나타내거나 내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 싶지 않습니다. 젊다는 것이 좋다는 것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다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기회도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사에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세요!!한말의 독립운동가로 우리민족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네가 하는 일에 네 정성과 최선을 다하라”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사람들을 향하여 한발 더 나아가 “최선을 다해도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운데,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어찌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느냐”라는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제가 재학생 여러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이 말입니다.“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네가 하는 일에 네 정성과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가정일이라면 가정에서, 학교에서라면 학교에서 친구관계라면 친구관계에서 공부라면 공부에서 나에게 맡겨진 일이 있다면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최고를 지향할 필요는 없습니다.어떤 사람은 특별한 은총을 받아 그 분야에서 최고일수는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수많은 사람 중에 한사람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는 한 사람 외에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최고를 고집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 최선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자는 세상이 천국이요, 일을 의무로 생각하는 자는 세상이 지옥이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이 요즘은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에 만족하는 사람이야 말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즐길 줄 아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오게 됩니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세요!!마지막으로 제가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입니다. 스티븐 크보시키 감독의 "원더(Wonder)"는 남들과 다른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 어기라는 소년이 좌충우돌의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정들을 그리고 있는데 어기는 이런 삶의 여정 속에 있는 편견과 잘못된 오해들을 하나하나 특유의 재치와 친절함으로 극복해 갑니다. 영화 원더의 한 장면은 자신의 죄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다른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어기가 자신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힘겨운 싸움을 합니다. 아마 이러한 어기의 싸움은 처음부터 너무나도 소비적인 논쟁과 싸움일 겁니다. 왜냐하면 어기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세상 속에서 일그러지고 왜곡된 편견들 때문에 사람임에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사람임에도 사람으로 살수 없으며, 자신도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왜곡된 편견, 오해들과 싸움을 해야 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저는 제가 다닌 백석대학교가 일그러지고 왜곡된 편견을 가진 세상을 향해 그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백석대학교의 모든 동문들 또한 동일한 가르침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렇게 동일한 가르침을 가지고 힘겨운 싸움을 하는 백석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서로서로 친절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우리 학교 출신만이라도 서로의 힘듬과 아픔을 알기에 그래서 그 아픔과 힘듬을 위로하고 언제, 어디서 만나든 오늘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친절히 대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석피플 of 백석] 시리즈 - ② 디자인영상학부 백재용 교수 (디자인영상학부 및 정보통 작성자 졸업생 인터뷰 조회수 3495 첨부파일 1 안녕하세요.디자인영상학부 영상애니메이션 전공과 정보통신학부 컴퓨터공학 전공을 복수전공으로 2008년에 졸업한 02학번 백재용입니다.백석피플을 통해 저와 같은 꿈을 갖고 열정적으로 학교생활 중인 모교의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조언을 주고자 이렇게 글로나마 인사드립니다.현재 저는 2017학년도부터 백석대학교 디자인영상학부 영상애니메이션 전공의 전임교원으로써 3D 게임모델링, 게임 컨셉아트 및 일러스트, 웹툰, 졸업작품 지도를 맡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어떤 경험들을 해왔는지 간략하게 적어보겠습니다. 대학생활에서의 경험과 기회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대학생활이었습니다. 단지 게임이 좋고,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던 제가 백석대학교에 입학한 후 좋은 인연들을 만나 진로를 선택하고 꿈을 위한 밑거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2002년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대학생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때마침 97학번 선배님들이 제 멘토가 돼 주었고, 이분들의 도움으로 다른 학생보다 빠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배들의 권유로 창업동아리 활동을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랩실과 같이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었으며, 복수전공을 알게 돼 수강신청과 학점 배분도 저학년 때부터 신경 쓸 수 있었습니다. 선배들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저는 대학시절 내내 같은 등록금으로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을 쌓아 유의미한 가치를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따라서 창업동아리 회장, 학생회 간부, 전공장, 랩장, 졸업준비위원장 등 학생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해봤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과 정말 가깝게 지냈습니다. 대다수의 학생이 교수님 연구실에 가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하는데, 저는 고민이 있을 때 마다 교수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통해 고민을 해결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의미 있는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영상애니메이션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한 결과 융복합 인재를 요구하는 요즘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다른 이들보다 쉽게 다양한 직장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며, 대학시절 다양한 활동으로 얻은 경험들이 사회생활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랩실활동을 통해 교수님 곁에서 지켜봐왔던 많은 것들이 제 진로와 꿈을 이루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제게 있어 의미 있는 대학생활은 수업시간 뿐만 아니라 수업 외 시간에 학교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꿈을 위한 여정교수가 되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며, 임용된 교수님들 역시 다 다른 여정을 겪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제가 처음으로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게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제가 따르던 두 분의 교수님을 곁에서 지켜보며 막연히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공과 학생에 대한 열의와 사랑에 나도 이런 멋진 교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이런 꿈을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들에게 말하면 백석대를 나와 어떻게 교수가 되냐고 많이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들만큼은 믿고 기도해주시며 제게 길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도전한 것이 석사학위 취득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조언대로 미국의 미대로 유학을 준비하며 교수님께 영문 추천서도 받고 포트폴리오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 유학생활은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다니다 뒤늦게 유학 온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대학교 이후 바로 석사에 진학한 저로써는 실력과 인맥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제가 잘 했던 것은 학부에서 배웠던 데로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공부한 것과 미국 대학원에서 배웠던 강의 자료들을 나중에 한국에서 강의할 수업의 자료로 차곡차곡 스크랩하며 꿈을 키워 나간 것입니다. 한국의 석사과정보다 2배 많은 학점(69학점)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졸업까지 약 4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개인사정으로 미국에서의 취업을 뒤로 하고 한국에 왔을 때도 은사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향후 어떻게 진로를 설계해야 할지 조언을 얻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박사학위 준비와 산업체 경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의 경력도 필요했습니다.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준비해야했기 때문에 박사과정은 토요일만 수업이 있는 일반대학원을 알아봤고 직장은 하루 강의를 제외해줄 수 있는 주 4일 근무처를 알아봤습니다. 다행히 강의 경력은 모교인 백석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수렴되는 방안들을 찾고 그 뒤로는 잠을 줄여가며 3~4가지 일을 매일같이 해왔습니다. 직장업무, 외주, 논문, 강의준비 등으로 항상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으며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강의경력, 직장경력, 논문, 학위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준비됐을 때 기회가 오고 운도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마치며저는 교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약 14년을 준비하고 공부했습니다. 이것도 다른 분들보다 매우 빨리 꿈을 이룬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다 저의 확실한 전공분야를 찾은 것이 30살이었으며, 더 나은 융복합 인재가 되기 위해 박사과정은 일부로 인문학인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습니다. 디자인, 공학, 인문학 세 가지 분야를 모두 공부한 후 아직도 일과 후 정부에서 제공하는 무상교육을 수강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수가 된다는 것은 학문과 계속 가깝게 지낸다는 말입니다. 막연히 학생을 가르치면 되겠지 가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트렌드에 맞게 공부해야 되며, 사실 강의보다 행정적인 부분과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공부가 정말 좋다면 후배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꿈을 갖고 계속 키워나가셨으면 합니다. 또한, 정말 후회 없이 의미 있는 대학생활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노는 게 너무 즐겁겠지만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학교의 수준은 학생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의미 있는 학창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누구보다 행복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고맙습니다. 처음 12 1 2 다음 페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