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ctId=bbs,fnctNo=1158 7 건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기독교학부 07학번 차성진 동문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5860 첨부파일 2 안녕하세요. 저는 2007년에 기독교학부에 입학하고 2011년에 졸업한 차성진입니다.2017년에 공군 군종장교로 임관해서 2020년에 전역한 뒤, 현재 공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담당하는 선교 목사와 백석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기독교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로 인사하다가 이렇게 동문의 자격으로 백석대학교 식구들과 인사하니 조금은 어색하고 반갑기도 하네요. 저는 기독교학부에서 기독교철학과 기독교실용음악을 전공했습니다. 기독교 철학은 지금은 사라진 전공이지만, 저에겐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지식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 시절 학부 선배님들, 교수님들과 함께 키웠던 작문, 사유 능력은 지금까지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실용음악에서는 단순한 음악 스킬 뿐만 아니라 예술을 대하는 자세와 창작자의 태도를 깊게 배울 수 있었고, 친구들과 합주를 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성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지금도 인디밴드 멤버로 있으면서 음반을 내고 있는데, 제 삶의 큰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보낸 3년 간의 군종장교 생활은 저의 인생을 바꾸어 준 계기였습니다. 29살이라는 나이에 작은 교회의 전권을 맞게 되어서, 내가 생각하는 교회론과 복음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었고, 수정과 보완을 반복해 저만의 종교관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때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을 양분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기독교 관련 책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똥 싸면서 읽는 기독교 이야기 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책 출간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 하고 있는 목회와 강사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석대학교에서 키워왔던 전인격적인 경험이 이 책 출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기독교학부는 특히 취업 문제에 있어서 다른 전공보다 더 막막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일의 개념으로 접근하기엔 사역이 아닌 것 같고, 사역의 개념으로만 접근하기엔 생계가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추천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활발히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성경 공부와 경건 생활도 꾸준히 하고 좋아하는 일도 꾸준히 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끊임 없이 글로 옮기신다면 나아갈 길이 점점 더 밝아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보건학부 응급구조학전공 이경엽 동문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7824 첨부파일 0 안녕하세요. 저는 보건학부 응급구조학전공 08학번 졸업생 이경엽입니다.현재 남양주소방서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올해 4년 차가 되었습니다.학부 시절 학업보단 주님보다는 주(酒)님과 가까웠던 사람이었던지라 이번 백석 피플 인터뷰 의뢰를 받고나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고민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저는 대학 졸업 후 1년 간 응급구조학과 조교로 일하다 이후 병원에서 임상 경력을 쌓았습니다. 종합병원 응급실, 국립중앙의료원 등 병원에서 근무하며 의사들과 같이 공부도 하고 각종 컨퍼런스에도 참석하면서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넓혔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근무하다가 2017년 소방공무원 구급특채시험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결과 지금 현 직장의 구급대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12월, 경기도 35개 전체 소방서의 구급대원 중 가장 많은 코로나 관련 구급 업무 및 이송 실적(코로나 확진환자 이송건수 16건, 코로나의심자 출동건수 120여건, 활동시간 13,935분)을 기록해 코로나19 유공자로 선정되어 도지사 표창장 을 받았습니다. 지난 한 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은 의료체계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구급대원들은 코로나 확진자를 수용할 인근 생활치료센터와 병원이 없어 저 멀리 지방까지 환자를 이송해야 했습니다. 작년 여름엔 비도 많이 왔고, 습한 상태에서 보호복을 장시간 착용하다 보니 피부질환을 항상 달고 살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응급구조학과 08학번 이경엽 동문 간호학과 10학번 김청화 동문제 아내는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코로나 중증 환자 전담 간호사로 5개월 째 확진자를 보고 있는 간호학과 10학번 김청화 졸업생입니다. 저희 부부 모두 코로나 확진자와 의심자를 접촉하는 고위험직종이여서 친구를 만나기도, 부모님을 뵙기도 어렵고, 외출도 자유롭지 못해 모든 걸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해결하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구급대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적은 심정지 출동에서 심장이 멈춘 환자의 심장을 회복시켰고, 그 환자가 정상적으로 일상생활로 복귀 한 후 감사인사를 왔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2019년 여름 50대 남성이 길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지나가던 시민이 신고한 건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심정지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는 무전이 들려오고 있었고, 현장까지 거리 8km 네비게이션 상으로 9분 소요 예정이었습니다. 심정지 환자였기 때문에 9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긴 시간이였습니다. 최대출력으로 사이렌을 울리면서 적색신호를 무시하면서 시속 120km/h 이상 밟으면서 현장 도착까지 3분 40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현장에 도착해 환자 상태를 확인했고, 환자는 심정지 상태로 심장이 멈춰 있었습니다. 즉각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고, 심박동 회복이 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을 했습니다. 일주일 후 병원에서 퇴원해 아내 및 두 자녀와 함께 찾아와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연신 고맙다며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셨는데, 중학생 아들이 본인도 커서 꼭 소방관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 외에도 보람있었던 일도, 화가 나는 일도, 힘들었던 일도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는 이경엽 동문2021년 2월부터는 일반인들에게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는 교육담당자가 되어 잠시 현장에서 떠나있었습니다. 현장직이 더 하고 싶지만, 현재 담당하고 있는 심폐소생술 교육 업무 역시 소방관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에게 심폐소생술 및 생활안전교육을 열심히 강의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심정지환자 소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교육을 할 예정입니다. 전 세계가 힘들어 하고 있는 현 코로나 19사태가 빨리 끝나 활발했던 시기가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경찰학부 경찰행정학전공 민웅기 동문(교정직 공무원 합격수기)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7903 첨부파일 3 안녕하세요. 경찰학부 경찰행정학전공 09학번 민웅기입니다. 민웅기 동문 졸업사진 제가 2020년 교정직공무원(교도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대학 3학년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2018년 졸업 후에도 계속 공부했으며, 오랜 수험생활 끝에 2020년 교정직 9급에 합격하였습니다. 수험기간은 햇수로 총 5년이었으며 2년 정도는 학교생활과 병행하고 어머니 병간호를 도와드리며 공부하느라 제대로 못 했었고 실제 공부한 기간은 2년 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작년 12월 최종합격 후, 지난 1월 법무연수원에 입교하여 코로나 사태로 인해 3주 간의 연수를 마치고, 2021년 2월 8일부터 춘천교도소로 발령받았으며 교정공무원(교도관)으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오랜 수험생활 동안 끝까지 믿어주시고 도와주신 부모님과 김안식 교수님(경찰학부 교정보안학 전공), 묵묵히 응원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Ⅰ. 나의 수험생활 1. 기본 베이스 저는 노 베이스 상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국어, 영어, 한국사, 교정학, 형사소송법 5과목 모두 기본부터 시작했고, 많은 분들이 고민하시는 영어 또한 기본적인 문법, 어휘, 독해가 안 되는 말 그대로 노 베이스 상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 하루 공부량 공시 공부를 하실 때 공부시간을 체크하며 공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다른 생각하는 시간, 잠깐 조는 시간 등등을 다 빼고 순수 공부하는 시간만을 타이머로 잰 시간을 순공 시간 이라고 표현합니다. 제가 시간을 재보니 순공 시간이 5시간이 안 돼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은 절대적인 공부량을 채워야만 합격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따라서 저는 매일 순공 8시간을 목표로 공부했으며 8시간을 채우기 위해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매일 공부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3. 독서실 아르바이트와 공부 스케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독서실 아르바이트를 강력 추천드립니다. 저는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2년 동안 독서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오후 총무로서 아침 11시 기상하여 오후 1시부터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저녁 8시에 총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면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새벽 3시에 취침하는 방법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오전 총무로 옮기게 되었고 아침 8시에 출근하여 독서실 총무 일을 하다가 저녁 8시에 마치고 남아서 저녁 11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돌아오는 스케줄로 공부했습니다. 공부 초반에는 영어, 한국사, 국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했고, 이 3과목이 어느 정도 잡힌 다음 선택과목인 교정학과 형사소송법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다만 영어와 한국사 공부는 매일 고정적으로 했습니다. 또한 그날 공부가 아무리 잘 돼도 저녁 12시에는 취침하려 노력했고 아침 7시 30분에 기상하였습니다. 4. 슬럼프와 휴식 공부를 하다 보면 반드시 슬럼프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하기 싫어도 적어도 순공 5시간은 채우려고 노력했으며 그것조차 안 될 정도로 아예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공부를 다 내려놓고 확실히 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쉼이 길어지면 절대로 안 됩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슬럼프 또한 결국 공부로 극복해내야 합니다. 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공부를 하였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책은 쳐다도 안 봤습니다. 푹 쉬는 것이 중요했고 그래야 다음 한 주 공부를 해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정말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안 만났으며 시험을 앞둔 3개월정도 전부터는 아예 모든 연락과 만남을 끊고 공부만 했습니다. 쉴 때는 주로 잠을 잤으며 영화도 많이 보았습니다. Ⅱ. 과목별 공부법 1. 공통과목(국어, 영어, 한국사) 국어는 이선재 강사님의 커리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기본강의, 기출, 매일국어, 독해야 산다, 모의고사 등등 거의 모든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한자는 한자성어만 완벽히 하였고, 문법을 확실히 잡아놓는 것이 중요하며, 독해는 매일 꾸준히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선재 선생님의 독해야 산다 자료가 좋기 때문에 하루 한 지문씩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영어는 이동기 선생님의 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어휘는 매일 공부 시작을 영어 단어 1시간 외우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동기 선생님의 어휘 3000 단어집을 보았으며, 문법과 독해는 하프 모의고사를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하프에 나오는 문법과 독해를 철저히 분석했고 모르는 부분은 기본서로 돌아가 복습하는 방식으로 공부하였습니다. 결국 영어를 잡지 않고는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국사는 전한길 선생님의 커리를 들었는데, 기본강의, 필기노트, 기출, 모의고사, 현대사, 문화사 특강 등 거의 모든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필기노트 강의는 총 10번 정도 들은 것 같고 기출문제집도 거의 20번 가까이 푼 것 같습니다. 특히 기출문제집과 필기노트가 좋았고 이 두 가지만 완벽히 소화해 낸다면 고득점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선택과목(교정학개론, 형사소송법개론) 교정학개론은 김지훈 강사님의 커리를 따라 기본강의, 심화강의, 법령집 강의, 기출강의, 모의고사 등 모든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기출문제집에 수록된 문제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기출문제집만 잘 소화해도 충분히 고득점이 가능합니다. 형사소송법개론은 신광은 강사님의 강의가 좋았습니다. 특히 2단계 모의고사 강의에 나오는 문제들만 완벽히 소화하면 시험 보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형소법은 쉽게 점수를 올릴 수 있었고 점수를 어느 정도 올려놓은 후에는 공부시간을 크게 할당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판례가 문제에 나오기 때문에 잠자기 전 15분~20분 정도 틀렸던 판례들을 꾸준히 읽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Ⅲ. 교도관으로 출발선에 서다! 제가 교도관의 꿈을 갖게 된 이유는 김안식 교수님을 만나면서부터 였습니다. 사실 교도관의 꿈을 전에도 갖고 있었지만 부모님의 우려와 반대 때문에 다른 공부를 2년 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마지막 학기 때에 김안식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교수님을 통해 교도관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그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교도관이 되고 싶다는 저의 생각이 확고해 졌으며 부모님께서도 저의 모습을 보고 저를 지지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교도관으로서의 꿈을 이룬 민웅기 동문 교도관은 사람을 살리는 직업입니다. 재소자들은 사회에서 죄를 지어 교도소로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구금하고 통제하는 것만이 교도관의 역할이 아니며, 그들이 출소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그들의 인격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도관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2021년 2월 8일부터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춘천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근무를 하게 됩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교도소에 오게 된 범죄자들에게 저는 법과 원리 원칙을 지키며 교정교화시키는,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교도관이 되고 싶습니다. 보건학부 간호학전공 박세윤, 이학도 동문(대구, 경북지역 파견 간호사)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9899 첨부파일 0 사랑합니다! 백석대학교 학생 여러분!저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하여 임시 백석피플 기자를 맡게 된 백석대학교 보건학부 간호학과 17학번 위지원입니다.이번 코로나19가 장기화가 됨에 따라 백석대학교에서는 제 8차 개강연기(2020.05.16기준)를 시행하여 전 교과목에 대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안정 시 까지 대면 수업을 연기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또 다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내에도 무척 많은 혼란과 어려움으로 다들 지쳐만 가는 것 같습니다. 학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본인의 신체건강이기 때문에 백석대학교 학생여러분들 뿐만 아니라 교수 및 교직원분들께서는 정부에서 내린 바이러스 예방 지침을 준수하여 추후 사태가 완화되면 건강히 다시 학교에서 뵈면 좋겠습니다.이 기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국민들의 건강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 방역의 최전방인 대구, 경북지역으로 파견을 나간 두 동문에 대한 기사입니다. 국가적인 재난 사태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곳 현장의 심각성과 의료진의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알아보고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기 위해 작성했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힘써주신 두 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더불어 대한민국 의료진분들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면대면 인터뷰를 진행하려 했지만 두 동문께서 국가적 헌신을 하고 난 뒤 자가 격리중이기에 전화통화와 메신저를 이용하여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1. 정말 고생하셨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우선 학생들에게 본인을 알릴 수 있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세윤 동문 이학도 동문 박세윤:사랑합니다! 백석대학교 학생여러분! 저는 2020년, 제60회 간호사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 이번에 신규간호사로 활동 중인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13학번 박세윤입니다. 이학도:안녕하십니까 학우 여러분. 저는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10학번 간호사 이학도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Q2. 인사를 나눴으니 바로 인터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태가 워낙 심각하여 선뜻 나서기 어려우셨을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경북 지역으로 의료지원을 가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박세윤:저는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나서 미리 계획해 두었던 해외여행과 그토록 가고 싶었던 졸업식이 이번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되어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뉴스에서 대구, 경북지역에 있는 간호사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들었고, 면허를 취득한 의료인으로써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구, 경북 간호사 모집 의료봉사를 신청하게 됐습니다. 이학도:학교를 다니면서 굉장히 흥미 있고, 재미있던 수업이 생각납니다. 안영미 교수님께서 지도해주신 재난간호 과목 이었습니다. 제 성향이 현장에 나가 몸으로 부딪히는 성향이다 보니, 재학 당시 감히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국가적, 사회적 재난에 대해 간호사로서의 임무와 마음가짐에 대해 많이 생각 했습니다. 이러한 학생 때의 기억과 현직 간호사를 하면서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던 경험이 대구, 경북에 의료지원 차 가게 된 발판이 되었습니다. Q3. 정말 쉽지 않는 선택이셨을 건데 이렇게 국민들을 위해 나서서 주셔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지원을 하시고 파견되셨을 때 현장의 상황은 어땠나요? 박세윤:저는 경북 경주에 있는 생활치료센터 로 발령을 받아 2020년 3월 3일부터 4월 15일까지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대구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300명 정도의 환자분들이 한꺼번에 이곳 시설로 수용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초반에 구체적인 의료시스템이 잡혀있지 않은 센터였기에 환자들을 케어하며 그와 동시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조차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고, 제가 있었던 치료센터 뿐만 아니라 대구, 경북 전체적으로 완치되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초기에 심각했던 상황이 점점 완화되어 무사히 근무를 마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학도:저는 코로나 거점병원인 대구의료원에 소속되어 근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물자, 인력, 시스템 모든 것이 부족하고 생소하다보니 하나하나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혼선을 빚기도 했습니다. 병동에는 매일 같이 신환이 입원하는 상황이었고, 어느 누구 한분 편하게 오프를 받으며 근무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특히 요양병원에서 연달아 확진자가 나옴에 따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입원하게 되셨고, 업무의 강도는 점점 높아져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움을 주신 덕에, 마음을 다잡으며 근무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Q4. 그곳에 계시면서 근무 하시는 동안 어려웠던 점이나 두려우셨던 점이 있으셨을까요? 박세윤: 먼저 어려웠던 점은 코로나19에 감염된 대상자분들은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이 넘도록 격리를 하게 되다보니 환자분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증가하여 저희에 대한 컴플레인 강도가 점점 심해지시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결국 우울증과 동시에 폐쇄공포증 등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나게 되어 그분들의 고통을 모두 다 헤아릴 수 없는 제 간호의 한계를 스스로 느꼈을 때가 어려웠습니다. 두려웠던 점은 사태가 심각했던 초기에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뉴스로만 보았던 코로나19에 감염된 수많은 분들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두려운 감정이 자연스레 생기게 됐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근무했던 의료진분들의 노력과 감정을 가장 가까이 교류하다보니 이 상황이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되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학도: 사실 근무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아마 대부분의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공감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고글은 습기로 가득 차 앞이 보이질 않고, 두 겹의 장갑을 낀 채, 어르신들의 라인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습니다. 특히 대구 내 요양병원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병상은 장기요양환자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장기요양환자의 경우 혈관도 약하고, 라인을 잡기가 쉽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무릎, 엄지손가락, 손바닥에 잡아야 할 정도로 정상적인 간호 술기를 제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현장에서 가족들도 보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정신적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Q5.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세윤: 하루하루가 새로운 상황의 연속이었기에 대략 1달 동안의 그곳에 있었던 모든 기억들이 제 머릿속에서 아직도 선명히 떠오릅니다. 그 중에서 특히나 가장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데요. 완치판정을 받고 퇴원하시는 환자분이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을 때 가슴속이 뭉클해지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어 더욱더 남아있는 환자분들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조금이나마 더 신경 쓰면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학도: 아무래도 보호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레벨 D 보호복을 착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파견 초기에 착용했던 보호복은 괜찮았지만, 나중에 바뀐 제조사의 보호복은 정말이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단 1개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3시간의 격리구간 근무가 끝나고 보호복을 벗었을 때, 크룩스에 땀이 찰랑거릴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려, 모든 옷이 다 젖었습니다. 정말 소나기를 맞은 듯 젖었기에 다음 근무를 위해 환자복을 입고 들어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때 숙소로 귀가 할 때도 환자복을 입고 가다보니 1층과 귀가도중 몇몇 분에게 잡혀 해명해야했던 기억이 납니다. Q6. 이 분들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슬슬 마무리해야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우리 보건학부 학생들 혹은 의료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조언 부탁드리면서 마무리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세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도움이 각각의 대상자 특성에 맞춰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에 더욱더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가지도록 본인 스스로가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간호사라는 직업은 그러한 능력이 충분히 발휘하여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의료인 또는 의료관계인을 꿈꾸는 학생 여러분들께서는 물론 좋은 조건의 병원에 취직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며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본인이 왜 이러한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고,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훌륭한 분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학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처음 전공책을 펼쳐봤을 때, 처음 실습을 나갔을 때, 그 어떤 상상보다 간호사로서의 근무는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육체적으로, 또 누군가에겐 정신적으로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희생을 통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되새기면서 각자 본인이 어떠한 간호사가 될 것인가에 대해 학생 때 많은 고민을 하시면 임상에 나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코로나19로 의료원을 다녀오신 두 선배님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몸이나 손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또한 다른 의료진분들 역시 피로도 증가와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태원에서부터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재확산되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확산하는 과정이 언론이나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속속히 나오면서 의료진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을 위해 열심히 수고해주시는 모든 것들이 한순간의 방심으로 물거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대구, 경북지역에 있었던 두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코로나19의 현장의 분위기는 우리가 미디어 매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의료진분들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손 위생, 마스크 착용 그리고 외부활동자제 등 정말 간단히 지키기만 하여도 그분들께 큰 힘이 될 수 있는 수칙인 것 같습니다. 악화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본인들의 건강을 희생하는 저 두 선배님과 더불어 대한민국 모든 의료진분들께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SKY백석피플] 티웨이항공 객실승무원 서문석 학생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11710 첨부파일 1 하늘위의 백석인 SKY백석피플 두 번째 주인공은최근 각광받고 있는 직업인 스튜어드(남자 항공승무원) 를 꿈꾸며 관광학부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하여 티웨이항공에 최종 합격함으로 꿈을 이루게 된 15학번 서문석 학생입니다.서문석 학생의 합격을 백석가족 모두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서문석 학생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서는 저희가 소방관이쟎아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저는 약한몸을 극복하고자 해병대에 자원하였고, 이를 계기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계속 할수록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쉬지않고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전역 후 뒤늦게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제게 항공서비스학과를 권유한 사람은 여동생 이었습니다. 여동생 또한 항공서비스학과에 재학중 이었던 터라, 여동생을 통하여 항공서비스학과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던 중 항공승무원은 서비스 위주의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하여 체력단련에 대한 관심이 한참 높았던 저는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한 이후에도 국내3대 마라톤 대회 출전 및 태권도 3단 취득,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 그리고 기본심폐소생술 이수증 등을 취득하며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승무원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였습니다.4학년으로 진급하면서 여러 항공사에 대하여 알아보던 중 무엇보다 안전 을 강조하는 티웨이항공 이야말로 저와 가장 잘 맞는 항공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여러 경로를 통하여 조사해보니, 티웨이항공은 안전한 비행 을 위하여 전 직원의 훈련센터를 1,600억원을 투자하여 건립하였고, 의류업체에서 주최하는 마라톤대회에도 적극 후원하는 등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항공사의 모습이라는 확신을 다시한번 갖게 되었습니다.이 때부터 저는 티웨이항공 입사를 목표로 삼아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였고, 오늘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Role model 을 만나다 어느날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던 중 TV화면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티웨이항공의 김형이 경영본부장님 이었습니다. 티웨이항공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저는 취업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미래의 직장상사를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바로 채널을 고정하고 TV시청에 열중 하였습니다.여러 가지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씀은 초지일관 하라 는 말씀 이었습니다. 백석대학교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할 때의 목표가 수석졸업 이었는데, 여러 학교생활 과정에서 초심을 잃기도, 나태해지기도 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항공승무원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면 반드시 가슴에 새기고 싶은 글자가 바로 초지일관 이었습니다.또한 이 TV프로그램을 시청함으로 조직 구성원들간의 소통 을 중요하게 여기는 티웨이항공의 사내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티웨이항공에 대한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만, 더 나중 미래엔 경영본부장님 같은 리더가 되어야 겠다는 또 하나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공감과 경청 내가 면접관이라면 어떤 질문을 할까? 라는 제목을 두고 스스로 면접 질문을 만들어 자문자답을 하며 면접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만들다보니, 신입사원 대상자를 바라보는 회사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단순한 면접준비를 뛰어 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서비스직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는 저의 단순한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고객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이 전까지의 준비를 모두 뒤집고 제가 가지고 있는 공감과 경청 능력을 최대한 보여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단순한 질문과 응답이 아닌 고객의 입장을 우선시 하는 자세를 가지고 답변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티웨이항공 면접날 기내식이 맛없다고 컴플레인 하는 고객을 응대해 보시오 라는 질문에 대한 role-play를 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준비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고객의 마음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드렸고,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내의 불가피한 상황에 대하여 고객에게 설명드리며 추후엔 꼭 맛있는 기내식을 제공해 드리도록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대부분의 면접관들께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셨고, 오늘의 모습을 기내에서도 꼭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같은 꿈을 꾸는 여러분에게 원하는 기업에 취업할 때에 좋은 학점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점은 한번 받으면 절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학기중에 최선을 다해야만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학점관리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또한 서비스직종의 특성상 상대로 하여금 호감을 갖게 만드는 여러 가지 비교과 활동들도 필수입니다. 저는 앞서 말씀드린 활동 이외에 독서클럽 등의 활동을 통하여 다른사람들과 편안하게 소통하는 습관을 익혔습니다. 물론 어학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필수입니다. 처음 토익시험을 보고 200점대 성적표를 받았던 저는, 이를 극복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였고, 현재 저의 토익점수는 850점입니다. 도전해보기 전에 포기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특히 항공서비스학과에 입학을 희망하는 예비 후배님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항공승무원은 보여지는 예쁜 모습, 화려한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평온한 비행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백조의 물갈퀴 같이 쉼없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항공승무원들입니다. 또한 승객들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해야 하는 지식도 갖추어야 합니다. 이 일을 사명이라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임할 준비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준비가 된 여러분은 모두 좋은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 2019년 9월 25일.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9월 25일자로 티웨이항공의 승무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기대, 설레임, 두려움... 말할 수 없는 여러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가슴도 두근두근 뜁니다. 티웨이항공을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티웨이항공에서의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겠습니다.정말 열심히 살아온 백석대학교에서의 4년을 좋은 열매를 맺으며 마무리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여러분 모두 꿈을 가지고 도전하세요.기회는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옵니다! 보건학부 간호학전공 심하은 동문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외래교수/가톨릭대학교 간호학 박사과정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9938 첨부파일 1 안녕하세요. 저는 백석대학교 보건학부 간호학과 2009학번 심하은 입니다.저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백석대학교 간호학과 외래교수로 출강하며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간호학과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저도 아직 꿈을 향하여 쉼없이 걸어가고 있지만, 백석대학교에 입학 후 지금까지 경험하고 느꼈던 시간들에 대하여 백석가족 모두와 나누고싶어 공유하려고 합니다.저는 고등학교 때 문과였습니다. 저의 전공으로는 여느 친구들처럼 인문계열, 경영계열 쪽으로 학과를 고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능을 본 후 경기도 한 요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으로 제 꿈이 바뀌었습니다.어르신께는 실례일 수 있겠지만 어린 10대 후반의 저에게 그 치매어르신은 너무 귀여웠습니다. 노인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간호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치매 노인의 ‘귀여우시고 아가 같으신(?)’면만 제가 경험하고 기독교대학의 첫 간호학과라는 이유로 부모님께서 권유해서 문과와 교차지원이 되는 백석대학교 보건학부 간호학과에 1기로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형제 중에서도 큰딸, 고등학교도 첫 기수였기 때문에 1기의 몇 가지 좋은 점과 힘든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이라는 설레임과 자유한 선택만큼 짊어지는 무게와 개척해야한다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1학년 1학기는 열심히 놀았습니다. 첫 개강파티 때 술을 너무 마셔서 친구 등에 업혀서 동기 집에서 잔 경험도 있습니다.(그 동기는 지금 미국에 가있네요^^) 그때 대학생이 되었다는 쾌감과 함께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았습니다. 해부학 시험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어려운 해부학의 시험의 악몽이..1학년 2학기 때부터는 이제 공부를 좀 해야겠다. 내 미래를 내가 책임지므로 더 이상 놀기만 할 수 없다 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워밍업의 단계여서 공부가 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가지고 청춘사업도하고, ‘좀 더 나의 스펙을 올려 볼까?‘하는 욕심도 가진 시기였습니다.제가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2학년, 아직 “간호”가 들어가는 전공과목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약리학, 미생물학 등등.. 동기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때 당시 교수학습개발원에서 공부잘하는 법, 효과적으로 몰입하는 법 같은 방법론적인 것을 탐구하며, 마인드맵을 그려가며 열심히 익혔습니다. ‘간호사가 되는길이 쉽지는 않구나 역시. 세상에 쉬운것은 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저의 열심히 하는 과정에는 저를 이끌어주시는 우리학과 첫 교수님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힘들 때 상담을 가면 밝게 웃으시며 꾸짖(?)어 주시고 붙들어주신 따뜻한 간호학과 리더교수님, 강의준비를 강의 시간의 3배로 하시고 자기관리의 신이신 교수님. 포근하고 넉넉한 다산의 상징이신 교수님 세분을 보며 제 꿈을 키워갔습니다. 저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얼마나 공부를 많이하고 경험을 많이 쌓아야 저 자리에 갈 수 있을까. 물 속의 발길질 만큼 고고한 백조의 모습처럼 너무 우아하고 지적으로 보였습니다.3학년 전공이 시작되면서 실습과 함께 제 꿈은 무너집니다. 너무 어렵고 쉽게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대학예배 때도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어린 이십대 초반의 저는 성인되는 삶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실습지에 나가서도 내가 진짜 간호사를 할 수 있을까와 하는 부담, 불안감과 함께 제 정체성과 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았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찬양을 base로 한 학우들의 뮤지컬이 있었는데 그때 CCM과 음악이 너무 좋아 이를 붙들고 계속 들으며 상념에 젖는 시간들을 보내며 드디어 졸업을 하여 큰 대학병원을 들어갑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데 환자를 간호할 수 있을까.” 병원 현장에서 새내기로서의 두려운 마음과 생명을 다루어야 하는 중요한 환경에서의 부담감이 느껴졌습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하여 저는 인간을 알고 저의 내면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공부하게 됩니다. 인문학의 넓은 바다 속에서 제가 찾은 답은 ‘온전한 것, 완전한 것은 없다.’입니다. “상징 심리학”에 대한 제 소정의 결과물을 내놓고 또 제가 생각한 것은 저의 삶을 예술적으로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섬길 수 있는 일이 뭘까. ‘Nursing is an ART‘. 간호철학 시간에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말이 떠오르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달란트로 간호를 다시 해보자 하여 다시 간호사로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는 환자들, 지속적으로 간호사의 케어가 필요한 환자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임상간호사는 Dynamic ART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현재 모교의 임상실습강사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학생들의 질문과, 또 제가 느꼈던 것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고민들, 상황들을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실습지도의 리더로써 잘 이끌어나가야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버텨나가고, 심지어 열정이 넘치는 예비 간호사들을 보면 제가 도리어 힘을 받습니다. 졸업 후 어떤 길이 펼쳐질지, 어떻게 날개를 펼칠지 고대하고 기대하게 됩니다.온전한 균형 보다는 흔들리는 과정에 있는 균형을 받아드리며 충만한 대학생활을 하길 기도합니다. 보건학부 응급구조학전공 김성호 동문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작성자 입학관리처 조회수 7723 첨부파일 1 안녕하세요.2014년 2월에 보건학부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한 10학번 김성호입니다.현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정규직신분으로 1급응급구조사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아직은 저 역시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후배여러분에게 어떤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던 중 학창시절의 일들과 취업까지의 과정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후배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고교시절 인문계(문과)를 거쳐 이과인 보건학부로 교차지원하여 입학을 했습니다.생소할것 같은 대학에서의 학습을 시작하며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임이 더 컸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신입생으로서 부푼 꿈을 안고 처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첫 수업에 임할 때엔 '열심히 하면 나도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졌고, 괜한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좋으신 교수님들의 강의시간 또한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부족했던 저는 저의 한계를 느끼며 마음이 무척 어려웠습니다.그리고 전공과목을 더 즐겁게 잘 이해하며 학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던 중,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친구들에게 질문을 할 때에 부끄러울 수도 있을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수업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더 컸기에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가며 부족한 부분을 배웠습니다. 그 이후 계속 친구들의 신세를 질 수 만은 없었기에 그 시간 수업내용은 강의실을 나서기 전에 다 이해하자는 각오로 수업에 임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대하면서 1급응급구조사로서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해 보고 싶어졌고, 이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실습에 임하면서 졸업 후 첫 직장은 응급의료센터로 진로를 결정하였습니다.그 때 부터 피나는 입사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만약에 내가 인사과라면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남들과 똑같이 준비하는 영어 공부, 성적관리 이외에 무엇을 더 준비하고 경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노력의 댓가 였는지 마침 저는 교내외로 여러 교과 및 비교과활동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여러가지 생각의 폭도 함께 넓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들을 기반으로 그토록 원하던 분당서울대학교병원으로 드디어 첫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책에서만 뵈었던, 메스컴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응급의학분야의 대가들을 많이 뵐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비록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퇴사 전까지 저분들께 되도록 많은것을 배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종류의 기구들을 다루면서 모르는 것은 스스로 찾아보았고, 같은 직종뿐만 아니라 응급의료센터에서 함께 근무하는 타분야의 종사자들과 협력하고 토론하며 많은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좋은동료이자 친구였고, 가족이며 스승이었습니다.매일이 보람되고 즐거웠던 병원에서의 생활은 계약 기간의 종료와 함께 마감하게 되었고, 병원에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현대제철 이라는 산업체에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병원과는 달리 산업체는 초기 신고부터 현장에서의 환자 문진, 평가 및 처치 그리고 무사히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는 것까지 본인의 판단하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병원에서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고,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산업체에서의 생활도 저에게는 좋았지만, 이전에 근무했던 응급의료센터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더 많은것들을 경험하며 배우고 싶었고, 그렇게 하여 전문가로서 1급응급구조사의 역량을 더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처음으로 1급응급구조사 정규직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입사 준비를 하였습니다.병원을 떠나온지 오래되어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근무하던 시절과 달라진 것들, 병원의 분위기, 홈페이지 및 병원 정책에 대한 뉴스 등 분당서울대학교병원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최대한 수집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최근에 병원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1급응급구조사로, 더군다나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의 학교생활은 공부하며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학교에서 누리고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누리고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삶에 있어 정해진 답은 없지만 다양한 경험과 노력들이 여러분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고, 자기 자신만의 답안지를 채워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원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 대해 입사 준비를 하고 원하는 곳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원하는 곳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 생각하고 준비해나가기를 바랍니다. 혹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두드리세요.여러분의 교수님, 그리고 앞서 경험하고 있는 선배, 실무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끝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처음 11 1 끝